DAILY WORD

염려하지 마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25-34...염려하지 마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 그리고 믿는대로 사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우리의 능력은 부족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 또한 고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입술로 고백하면서도 늘 마음 한편으로는 먹고사는 문제를 염려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시대와 상관없이, 믿음과 상관없이 늘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주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근거는,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아버지는 자녀의 필요를 알고, 그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를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염려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위해 이 땅에 재물을 더 쌓아두려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런데 실상 더 중요한 것은, ‘목숨’과 ‘몸’입니다. 하지만 목숨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고 마시는 음식이 반드시 필요하고, 몸을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보호하거나 사람들로부터 수치심을 가리기 위해서도 옷이 꼭 필요합니다. 이것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목숨을 위하여 먹고 마시는 것과, 몸을 위하여 입는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요하고, 몸이 옷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수단을 목적처럼 중요하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돈이 있어야 목숨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다면, 그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도 책임지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공중의 새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새는 자신들이 먹을 것을 위해 씨를 뿌리지도, 거두지도 않지만, 하나님이 기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새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먹이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새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고, 안전한 곳에 둥지를 만들어 거하면서 새끼도 낳아 기릅니다. 그러나 새들의 행동은 자신들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대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이며, 그분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먹고 마시는 문제로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대적하는 요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감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삶의 주권자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믿을 때, 먹고 마시는 염려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모든 만물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믿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들의 백합화는 아무런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지만,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 아름답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들꽃은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연약한 존재임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름다움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들의 백합화보다 더 귀한 존재인 사람이 왜 입을 옷을 염려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고 반문하십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인 우리를 방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자녀의 필요를 아시고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에게는 믿음을 다시 점검하라는 신호입니다. 염려는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지 않는다는 가정에서 시작되지만, 믿음은 하나님이 이미 알고 계시고, 이미 일하고 계시다는 확신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니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염려가 아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염려는 내일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오늘의 힘을 빼앗을 뿐입니다. 염려는 우리를 바쁘게 만들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염려는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아닌, 우리의 평안을 갉아먹는 나쁜 습관입니다. 우리는 염려하면서 책임감을 느끼지만, 염려는 우리의 능력이 아닌 한계의 표현일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가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염려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는 모든 일상이,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에 있음을 우리는 늘 기억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들에 피는 백합화조차도 소홀히 하지 않으시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어떤 문제로 염려한다는 것은, 그 문제에 집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재물이 있는 곳에 그 마음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어떤 문제에 대해 염려한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는 기도와 밀접한 연관을 갖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도가 기도해야 할 것은, 세상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이는 성도가 마음을 쏟아야 할 대상이 세상의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고,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합니다(고후 7:10).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우상 앞에서 구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기복신앙이 교회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 생명을 얻은 자로서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공중의 새가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목적대로 이 땅에서 살아갈 때,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되, 풍성하게 채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녀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염려로 가득한 우리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염려를 해결할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마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이 우리에게는 더 풍성히 임할 것입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의 방식입니다. 성도가 재물에 대한 바른 가치관을 정립하지 못하면, 이방인처럼 살게 됩니다. 육신을 위해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구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염려함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러니 성도로 부름받은 우리는 잠깐 있다가 없어질 세상의 것을 구하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사는 자가 됩시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는 육신을 위한 불신앙의 염려를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염려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내일을 위한 염려와 불안이 엄습할 때,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께 먼저 감사의 기도를 드립시다.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염려와 불안을 일으키는 요소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염려는 문제 해결에 아무 기여도 하지 못합니다. 우리 내면의 평강을 깨뜨리고, 불안을 양산할 뿐입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믿음의 발걸음을, 세상을 향해 내딛는 복된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생계에 대한 염려와 불안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내가 기억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내 삶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해야 할까요? 내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돌보심을 나는 어떤때에 느끼나요?

오늘도 샬롬 ~~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Therefore I tell you, do not worry about your life, what you will eat or drink; or about your body, what you will wear. Is not life more than food, and the body more than clothes?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Look at the birds of the air; they do not sow or reap or store away in barns, and yet your heavenly Father feeds them. Are you not much more valuable than they?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Can any one of you by worrying add a single hour to your life?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And why do you worry about clothes? See how the flowers of the field grow. They do not labor or spin.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Yet I tell you that not even Solomon in all his splendor was dressed like one of these.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If that is how God clothes the grass of the field, which is here today and tomorrow is thrown into the fire, will he not much more clothe you—you of little faith?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So do not worry, saying, ‘What shall we eat?’ or ‘What shall we drink?’ or ‘What shall we wear?’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For the pagans run after all these things, and your heavenly Father knows that you need them.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But seek first his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given to you as well.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Therefore do not worry about tomorrow, for tomorrow will worry about itself. Each day has enough trouble of its 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