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WORD

우리의 도피성, 예수 그리스도 !!!

여호수아 20;1-9...우리의 도피성, 예수 그리스도 !!!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며 살아갑니다. 살면서 한번도 실수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더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실수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두려움과 심한 자책감에 절망감을 느끼며, 우리의 연약함을 다시한번 실감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의 제도, 바로 ‘도피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도피성’은 단순한 사회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이 함께 드러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이 도피성을 두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정의로운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도피성을 지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레위 지파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지 않았지만, 그 대신 각 지파에게서 모두 48개의 성읍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가축과 그들의 가족이 거주할 목초지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6개의 성읍을 하나님은 도피성으로 사용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레위지파가 이스라엘 안에서 도피성과 같은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레위지파가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고, 제사가 진행되며, 하나님께 나아가기도 하고, 죄가 용서되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도피성은 요단 동편에 3개, 그리고 요단 서편에 3개를 각각 배정합니다. 요단 서편에서는 납달리 지파의 게데스에, 에브라임 지파의 세겜에, 그리고 유다 지파의 헤브론에 속해 있는 레위지파의 성읍에 각각 하나씩 도피성을 배정합니다. 그리고 요단 동편에는 르우벤 지파의 베셀에, 갓 지파의 길르앗 라못에, 므낫세 반지파의 바산골랏에 속한 레위지파의 성읍에 도피성을 배정합니다. 도피성 제도는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사는 이방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제도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언약을 준수하는 개종한 이방인(게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피성은 인간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이었습니다. 도피성 제도는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게 한 자가 억울한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은혜의 제도입니다. 그러나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살인을 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의 행위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동기와 중심까지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피성 제도는 하나님이 의도적인 죄와 실수로 인한 죄를 구분하셔서, 피의 복수가 일어나기 전에, 실수로 살인한 자가 회중앞에서 적법한 재판을 받게 함으로써, 정의가 실현되게 하는 방편인 것입니다.

도피성 제도는 실수와 무지로 인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에게 회복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도피성 제도는 하나님이 주신 땅을 정의롭고 거룩하게 유지하는 장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정의와 자비를 동시에 실현하신다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도피성은, 살인자가 스스로 도피하는 장소가 아니라, 공동체가 그를 끌어안고 보호하는 장소인 셈입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보호가 아니라 성읍 장로들 앞에서 사건을 진술하고, 말씀의 검증을 통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자비입니다.

그리고 ‘그해의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도피성으로 도피한 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대제사장이 죽으면,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어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은 살인자가 하나님과 화해하기 위해서는 속죄가 필요함을 의미하며(민 35;33), 대제사장의 죽음이 일종의 대속적 죽음임을 의미합니다. 이는 대제사장의 죽음과 살인자의 속죄를 연결시키셔서, 도피성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상징으로 보여주신 것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담당하신 대제사장이시며, 그분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참자유를 얻었습니다.

이 말씀은 공의가 없는 자비는 방종이며, 자비가 없는 공의는 정죄라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그러니 우리 삶에도 도피성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문제를 피하는 곳이 아니라, 회복을 준비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침묵과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고, 그분의 공의와 자비를 함께 누릴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품는 도피성이자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그분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영원한 속죄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도피성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셨고, 그 은혜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 은혜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죄로 인해 넘어질 때마다 회복할 기회를 주시는 주님께 우리는 감사의 제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열려있는 영원한 도피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초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성도들이 모인 교회공동체는 사람을 나누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의 초청을 실현하고, 함께하는 은혜의 도피성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교회공동체는 죄로 인하여 깨어진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와 자비를 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열방의 모든 사람에게 미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의 대상에는 제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분을 따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는 함께 사는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는 언약 백성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이방인이라도 부지중에 살인하면,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들도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함께 거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언약을 준수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동화되어 살아가던 자들이었어요. 그들 역시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에, 도피성이 필요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에 하나님의 도피성이 필요하고, 차별이 없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도피성은 하나님의 성품, 즉 공의와 자비, 회복과 용서를 상징합니다. 우리에게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참된 도피성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정죄가 아닌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무조건 정죄가 아닌, 회복의 길을 먼저 여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우리 가정이, 우리 삶의 자리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주님의 은혜를 전하는 도피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실수로 죄를 지었을 때, 나는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하나요?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나는 얼마나 깊이 느끼나요?

오늘도 샬롬 ~~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Then the LORD said to Joshua: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Tell the Israelites to designate the cities of refuge, as I instructed you through Moses,

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so that anyone who kills a person accidentally and unintentionally may flee there and find protection from the avenger of blood.

4.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중에 거주하게 하고
When they flee to one of these cities, they are to stand in the entrance of the city gate and state their case before the elders of that city. Then the elders are to admit the fugitive into their city and provide a place to live among them.

5. 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If the avenger of blood comes in pursuit, the elders must not surrender the fugitive, because the fugitive killed their neighbor unintentionally and without malice aforethought.

6.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They are to stay in that city until they have stood trial before the assembly and until the death of the high priest who is serving at that time. Then they may go back to their own home in the town from which they fled.”

7.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So they set apart Kedesh in Galilee in the hill country of Naphtali, Shechem in the hill country of Ephraim, and Kiriath Arba (that is, Hebron) in the hill country of Judah.

8.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East of the Jordan (on the other side from Jericho) they designated Bezer in the wilderness on the plateau in the tribe of Reuben, Ramoth in Gilead in the tribe of Gad, and Golan in Bashan in the tribe of Manasseh.

9.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Any of the Israelites or any foreigner residing among them who killed someone accidentally could flee to these designated cities and not be killed by the avenger of blood prior to standing trial before the assemb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