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WORD

참된 예배가 공동체를 회복시킵니다.

스가랴 7;1-14...참된 예배가 공동체를 회복시킵니다.

참된 예배는 단순한 종교 행위나 의식이 아닌, 진정한 회개와 순종이 담긴 예배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정의를 행하는, 긍휼과 자비가 본질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벧엘 사람들의 금식에 대한 질문을 통해, 유다 공동체가 회복해야 할 참된 예배에 대한 영적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자기중심적이고 외형만 남은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과 순종이며, 이웃을 향한 정의와 긍휼입니다.

오늘 본문은 금식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다리오 왕 제 4년 9월은 성전재건이 시작되고 스가랴가 환상을 본지 약 2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당시 유다 공동체는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는 70년 동안, 솔로몬 성전 파괴를 기억하기 위해 매년 5월과 (왕하 25;8-9).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시드기야를 끌고간 후 대신 세웠던 그달리야가 죽은 것을 기리며, 매년 7월에 금식하고 있었습니다(왕하 25;25, 렘 41;1-3).

어느날 벧엘 사람 몇사람이 종교지도자들을 찾아와 성전파괴를 기억하는 금식을, 성전이 완성되어 가는 시점에도 계속해야 하는지 질문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질문에 하나님은 도리어 그들이 지금까지 행한 금식이 정말 하나님을 위한 금식이었는지를 묻습니다.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라는 하나님의 질문은 그들이 행한 금식이 단순한 종교적 행위에 불과했음을 지적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금식에 대한 논쟁을 다루지만, 이는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문제에 불과하며, 근본적으로는 형식적이고 율법주의적인 이스라엘의 종교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이 있고, 금식을 한다고 해서 샬롬이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성전 건축이나 성실한 제의가 아닙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를 위한 도구들일 뿐입니다. 진정한 금식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마음과 삶의 전적 헌신이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는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고, 진정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예배자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예배의 형식이 아닌 그 안에 담긴 예배자의 마음과 삶을 보십니다.

금식은 곡기를 끊음으로써 철저히 자아를 죽이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만 내안에서 이뤄지기를 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행위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금식입니다. 그러므로 금식에는 반드시 회개와 내적변화에 대한 열망이 함께 수반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정의로운 재판과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선지자의 말에 귀를 막았습니다.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고, 마음에 악한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정의를 버렸고, 진실과 인애와 긍휼을 버렸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빠진 금식과 수많은 제의는,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은 공의를 행하고, 이웃의 고통을 나누는 삶이 수반되는 삶입니다. 금식은 이기적인 욕망을 이한 수단이 아닙니다. 금식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 가시는 방법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금식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자기 욕망에 대해 금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편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등을 돌리고, 귀를 막았고, 수치심을 잃었고, 그들의 마음이 마치 금강석처럼 뻔뻔하여 염치를 몰랐습니다. 그들의 완고함에 진노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알지도 못하는 여러나라 가운데 흩어버리신 것입니다. 애굽에서 건진 자기 백성을 다시 노예로 만들어 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비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어야 할까요? 예배의 자리에서 그 예배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한 헌신인지 아니면 습관을 따르거나 체면을 세우기 위함은 아닌지, 우리는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참된 예배는 진정한 회개와 순종이 있는 예배입니다. 회개와 순종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 앞에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된 자신의 연약함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예배자로 서기를 소망합니다.

참된 예배는 공동체 안에서 이웃을 향한 정의와 긍휼, 인애와 자비로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참된 예배는 정의를 행하고,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삶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신앙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 구성원들을 돌아보는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즉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부터 시작하여, 공동체 안에서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로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회복해야 할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헌신, 공동체에서 실천되는 정의와 긍휼이었습니다.

참된 예배는 교회 안에서의 모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배와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가식적인 금식과 제사보다 이웃을 돌보는 정의와 인애와 자비의 실천을 더 기뻐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개인주의와 경쟁으로 약한 자들이 점점 소외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런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긍휼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참된 예배자로 하나님의 정의와 긍휼을 실천함으로, 잃어버린 영혼을 그리스도의 품으로 인도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참된 예배는 공동체의 회복을 가져옵니다. 오늘 본문에서 스가라는 유다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완고한 마음으로 돌이키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그 결과로 심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는 무시되었고, 그 결과 아름다운 땅은 황폐해졌으며 백성은 흩어졌습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생명의 말씀에 귀를 막고, 자기 유익만 구하면서, 이웃을 돌보지 않으면, 결국 패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가 참된 예배자로 설 때, 공동체가 사랑으로 회복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예배자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다른 지체들을 향한 헌신과 섬김으로 표현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형식적 종교 행위가 아닌 정의와 자비가 실현되는 진정한 예 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예배는 회개와 순종으로 하나님 앞에 드려져야 하며, 이웃을 향한 사랑과 실천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행하는 기도와 금식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내가 등을 돌리고 외면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없나요?

오늘도 샬롬 ~~

1. 다리오 왕 제사년 아홉째 달 곧 기슬래월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In the fourth year of King Darius,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Zechariah on the fourth day of the ninth month, the month of Kislev.

2. 그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의 부하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The people of Bethel had sent Sharezer and Regem-Melek, together with their men, to entreat the LORD

3.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이르되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 하매
by asking the priests of the house of the LORD Almighty and the prophets, “Should I mourn and fast in the fifth month, as I have done for so many years?”

4.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Then the word of the LORD Almighty came to me:

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Ask all the people of the land and the priests, ‘When you fasted and mourned in the fifth and seventh months for the past seventy years, was it really for me that you fasted?

6.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And when you were eating and drinking, were you not just feasting for yourselves?

7. 예루살렘과 사면 성읍에 백성이 평온히 거주하며 남방과 평원에 사람이 거주할 때에 여호와가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외친 말씀이 있지 않으냐 하시니라
Are these not the words the LORD proclaimed through the earlier prophets when Jerusalem and its surrounding towns were at rest and prosperous, and the Negev and the western foothills were settled?’ ”

8.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And the word of the LORD came again to Zechariah:

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This is what the LORD Almighty said: ‘Administer true justice; show mercy and compassion to one another.

10.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Do not oppress the widow or the fatherless, the foreigner or the poor. Do not plot evil against each other.’

11. 그들이 듣기를 싫어하여 등을 돌리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But they refused to pay attention; stubbornly they turned their backs and covered their ears.

12.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나왔도다
They made their hearts as hard as flint and would not listen to the law or to the words that the LORD Almighty had sent by his Spirit through the earlier prophets. So the LORD Almighty was very angry.

13.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한 것처럼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 ‘When I called, they did not listen; so when they called, I would not listen,’ says the LORD Almighty.

14. 내가 그들을 바람으로 불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에 흩었느니라 그 후에 이 땅이 황폐하여 오고 가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을 황폐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I scattered them with a whirlwind among all the nations, where they were strangers. The land they left behind them was so desolate that no one traveled through it. This is how they made the pleasant land deso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