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WORD

비판하지 말고 용납하라

로마서 14;1-12... 비판하지 말고 용납하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에게 있어 신앙의 본질은 하나지만, 신앙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교단에 따라, 교회의 역사에 따라, 시대와 공간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신앙의 양식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신앙의 모습을 언급하면서, 그것으로 인해 서로를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사람의 환경과 생김새가 다 다르듯이 믿음의 분량도 신앙의 모습도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이질적 문화를 가진 그리스도인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의 하나됨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가 바로 음식 문제였습니다. 레위기 11장에는 이스라엘이 먹을수 있는 정결한 음식과 먹을수 없는 부정한 음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조상대대로 돼지고기와 같은 부정한 고기를 먹는 것을 꺼려했고, 더구나 우상의 제단에 바쳤던 고기는 부정했기에 더더욱 먹을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방인들도 부정한 자라 여겼기에, 같은 자리에 앉아 함께 음식을 먹거나 식사의 교제를 하는 아주 것이 힘든 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율법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음식이나 날, 절기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을 믿음이 연약한자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으니 모든 것에서 자유함을 누려도 된다고생각하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믿음이 강한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율법을 따르지 않는 이방인 헬라인들이, 헬라인들이 보기에는 율법에 얽매여 자유가 없는 것처럼 사는 유대인들이 서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경건을 위해 우상의 제단에 올랐던 고기를 먹으면 안된다고 생각했고,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신이시기에,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므로, 어떤 음식을 먹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특별한 날을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이 주님의 날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런 다양한 생각들은 공동체의 갈등을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의 다양한 양식들은 우리가 꼭 지켜야 하는 신앙의 본질은 아닙니다. 각자 문화의 차이에서 온 비본질적인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문제로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신앙의 본질적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덜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정작 더 중요한 사랑의 계명을 어기는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서로의 다름을 기꺼이 수용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음식을 자유롭게 먹는 자들에게는 먹지 않는 자들을 업신여기지 말고, 특정 음식을 제한해서 먹는 자들에게는, 자유롭게 먹는 자들을 비판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기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받아주신 자들이라면, 우리도 마땅히 받아야 합니다. 진리는 타협하면 안되지만, 관습과 의식 등에 관한 비본질적인 문제라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서로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각 사람은 신앙의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기준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공동체 안에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를 배려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어떤 음식을 먹는지, 어떤 혈통을 타고났는지, 어떤 날을 절기로 지키는지 등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예수님의 소유입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 예수님을 위해 살고, 예수님을 위해 죽는 자들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형제자매의 문화적 차이의 행위를 보고 상대방을 비난하고 판단하는 것은, 그 사람의 주인이신 주님을 판단하는 행위가 됩니다. 만약 내가 어떤 성도가 하는 행위를 보고 그를 비난하면, 그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비난하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뿐임을 고백하면서도, 형제를 비난하거나 판단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자리를 넘보는 죄를 범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이 약한 성도를 업신여기거나 비난하거나 판단하기보다 배려하고 용납할 것을 반복해서 권면합니다. 믿음이 약한 성도를 배려하는 태도는 단지 선행의 차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러니 나와는 신앙의 스타일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판해서는 안됩니다. 신앙의 모습이 때로 나와 다르고, 우리 마음이 들지 않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나에게는 연약한 성도들을 배려하는 올바른 자세가 있는지, 자신을 살피고, 신앙을 돌아보기를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결코 흑자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공동체 안에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뛰어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많이 부족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서로 갈등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연약한 자들을 용납하고 비판하지 말라고 강하게 명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행한 일이라면, 양쪽 모두 옳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중심입니다. 형제가 하나님 앞에서 최선으로 결정한 것이라면 그 자체로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신앙을 인정하는 것에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죽는 것이라면, 먹고 마시는 것의 차이는 쉽게 용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지체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여전히 먹고 마시는 육신의 일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형제를 업신여기거나 비난하지 마십시오. 그들을 위해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를 업신여기고 비판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는 무서운 범죄이기에, 사도바울은 결단코 형제를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합니다. 예수님도 작은 자 하나를 실족시키는 사람은, 차라리 그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는 극단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마18:6).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관심이 특별히 “작은 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깨달은 성도라면, 하나님의 이런 뜻을 마음에 품은 성도라면, 형제를 업신여기거나 판단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지체를 대하는 바른 자세는 ‘용납’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빚어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초한 용납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하나님이 이미 당신의 백성으로 받아들였기에, 교회가 임의로 거절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지체를 용납하는 것이 하나님의 용납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두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이 강한 자들이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배려하고,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용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행위를 보고 비난하거나 판단할 것이 아니라, 각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온전히 진리 위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훗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오늘도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마음과 생각과 입술을 잘 지켜 승리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내가 비판을 그치고 받아들여야 하는 이는 누구인가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 죄가 되지 않도록 내가 주의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도 샬롬 ~~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Accept the one whose faith is weak, without quarreling over disputable matters.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One personʼs faith allows them to eat anything, but another, whose faith is weak, eats only vegetables.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The one who eats everything must not treat with contempt the one who does not, and the one who does not eat everything must not judge the one who does, for God has accepted them.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Who are you to judge someone elseʼs servant? To their own master, servants stand or fall. And they will stand, for the Lord is able to make them stand.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One person considers one day more sacred than another; another considers every day alike. Each of them should be fully convinced in their own mind.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Whoever regards one day as special does so to the Lord. Whoever eats meat does so to the Lord, for they give thanks to God; and whoever abstains does so to the Lord and gives thanks to God.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For none of us lives for ourselves alone, and none of us dies for ourselves alone.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If we live, we live for the Lord; and if we die, we die for the Lord. So, whether we live or die, we belong to the Lord.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For this very reason, Christ died and returned to life so that he might be the Lord of both the dead and the living.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You, then, why do you judge your brother or sister? Or why do you treat them with contempt? For we will all stand before Godʼs judgment seat.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It is written: “ ‘As surely as I live,’ says the Lord, ‘every knee will bow before me; every tongue will acknowledge God.’ ”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So then, each of us will give an account of ourselves to 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