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8...삶이 예배가 되게 하라
신병교육대에 갓 입소한 군인들은 군인으로서의 능력도, 태도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신병들은 군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교육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구원의 큰 은혜와 감격 가운데 믿음대로 살겠다고 결단하지만, 막상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 뜨겁던 마음은 식고, 바뀌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배워야 하고 바꿔야 합니다. 바울은 오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구체적인 모습과 자세에 대해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하는 새로운 이스라엘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새 생명을 얻게 된 자로서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생명과 삶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삼아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으니까요. 그래서 바울은 성도의 새로운 삶에서 첫 번째 원칙이 바로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강조합니다.
구약시대의 제사는 살아있는 짐승을 죽여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습니다. 짐승을 죽이는 것은, 제사드리는 사람의 죄의 값을 대신 지불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출애굽 당시의 유월절 사건입니다. 어린양의 피가 없으면 그 집의 장자와 모든 동물의 첫 새끼들이 죽었지만,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라져 있는 이스라엘 집은 여호와께서 그냥 넘어가셨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장차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대속의 죽음을 당하실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상징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성도들은 짐승의 대속으로 죄사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제사를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아의 대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제사는 늘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친히 감당하심으로, 그를 믿고 구원받은 모든 세대는, 죄사함의 은총을 영원히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님이 친히 화목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신 이후 신약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더 이상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대신, 안식 후 첫날 공동체로 함께 모여 신앙을 고백하며, 구원의 은총과 감격을 함께 나누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예배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가 겪는 위기 중 하나가 ‘삶과 예배의 분리’입니다. 주중에는 마치 예배와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살다가, 주일에 공동체에서 드리는 한 시간의 예배로 성도로서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은 성도가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몸’은 삶의 일부가 아닌 ‘삶 전체’를 말합니다. 예배는 예배당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모든 현장이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단이 되어야 합니다. 주일에 축도가 끝나면 예배가 끝이 아니라, 그때부터 진짜 삶의 예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 영광을 돌리고 심령을 새롭게 하는 시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교회의 공예배만을 예배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우주에 편만하고, 우리의 심령은 성령의 내주로 매순간 새롭게 될 수 있기에, 삶의 모든 순간이 예배입니다. 한정된 시간과 장소로만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면, 삶이 거룩해지는 시간이 삶에서 아주 제한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영원한 것처럼, 삶의 예배 역시 모든 시간에 계속되어야 합니다.
매순간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타락한 세상의 가치관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는 겉모습의 변화가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완전한 변화이기에, ‘마음을 새롭게’ 해야만 가능한 변화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며, 성도를 속이고 참소하여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본받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저 마음과 세상이 이끄는 대로 살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영적 예배를 선택하면, 이 세대를 역행해야 하고,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도 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로 드리는 삶은, 매일 영적 전쟁을 치르는 치열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삶은 좁은 길이고, 사람들이 꺼리는 어려운 길임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 길을 선택하라 권면합니다. 그 길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자리에서 말씀과 기도로 경건을 훈련해야 하고, 말씀과 기도로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가야 합니다. 그 과정이 곧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요, ‘삶의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라는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상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 삶의 예배의 모습은, 공동체 안에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우리 육신의 몸은 하나지만, 몸의 장기들이 하는 역할은 다 다릅니다. 어느 한 장기가 다른 장기의 역할을 침범하면 우리의 몸은 망가집니다. 우리 몸에 있는 장기는 크든 작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두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한 몸된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각자 아는 것도, 받은 은사도 다릅니다. 그렇기에 거룩한 삶의 모습이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가르치고, 어떤 사람은 예언하며, 어떤 사람은 위로하고, 어떤 사람은 구제합니다. 거룩한 삶의 다양한 모습들이 연합하여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을 완성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거룩한 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자 믿음의 분량과 은사가 다름을 인정하고, 자기에게 맡겨진 범위를 벗어나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탁월한 한 사람만으로 교회를 세우지 않습니다. 각자의 은사를 사용해 겸손히 섬기는 사람이 많아질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온전히 세워져 가고, 성도는 그 안에서 비로소 진정한 연합과 하나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충성되게 섬기면 됩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내가 아는 것을 온전히 행하는 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시지만, 그것은 소수의 특별한 사람만 도달할 수 있는 높은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 각자는 고유의 모습과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우리를 다스리시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교회의 머리십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체들 각자에게 요구되는 삶의 태도는 성실과 부지런함과 즐거움입니다. 내게 맡겨 주신 직분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은사에 부합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합니다. 공동체에서 다른 지체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분별할 수 있고, 채워나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장을 통해 우리는 더 온전하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악 된 세상을 살아가기에 우리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러나 주님만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성도로서의 새 삶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때, 이 세대를 따르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는 거룩한 영적 예배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신앙인으로서 드러나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는 무엇이며, 나는 어떤 자세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나요?
오늘도 샬롬 ~~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Therefore, I urge you, brothers and sisters, in view of Godʼs mercy, to offer your bodies as a living sacrifice, holy and pleasing to God—this is your true and proper worship.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Do not conform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ʼs will is—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For by the grace given me I say to every one of you: Do not think of yourself more highly than you ought, but rather think of yourself with sober judgment, in accordance with the faith God has distributed to each of you.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For just as each of us has one body with many members, and these members do not all have the same function,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so in Christ we, though many, form one body, and each member belongs to all the others.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We have different gifts, according to the grace given to each of us. If your gift is prophesying, then prophesy in accordance with your faith;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if it is serving, then serve; if it is teaching, then teach;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if it is to encourage, then give encouragement; if it is giving, then give generously; if it is to lead, do it diligently; if it is to show mercy, do it cheerfu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