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11-24...넘어짐은 또 다른 회복의 시작입니다.
한국 교회는 시련의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의 영향력과 지도력에 의문을 표하고, 교회보다 더 신뢰하고 의지할 곳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넘어짐은 어쩌면 세상의 구원을 위한 시간일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 복음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구원에서 멀어짐으로, 거치는 돌에 넘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넘어짐을 통해 구원의 물결이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흐르게 하셨습니다. 복음을 들은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옴으로써, 영적 이스라엘의 범위가 확장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넘어짐은 또 다른 회복의 시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스라엘의 넘어짐으로 인해 영적 이스라엘이 되는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바울은 어디를 가든, 어느 도시에서든, 언제나 유대인의 회당부터 먼저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배척했고, 바울을 핍박했습니다. 유대인들을 일찍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많은 특권을 누렸지만, 교만함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메시아를 죽임으로 구원이 복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점차 복음을 들고 이방인들에게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구원의 역사에서 한발 비켜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대로 메시아를 보냈으나 거부했고,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기중심, 자기 의로 열심을 낸 결과, 하나님의 새로운 약속, 곧 믿음으로 얻는 구원과 새롭게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음과 은혜를 통한 구원을 설명하던 바울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로 복음의 발걸음을 옮기면서,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받아들이면서, 주께 돌아오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실패하여 넘어졌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넘어짐을 사용하셔서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가 더 풍성하게 확장되어 가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의 넘어짐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넘어진 유대인들이 다시 일어날 것을 소망하게 됩니다. 즉 유대인의 일부가 버림받은 그 자리에, 마치 하나님과 아무 상관도 없는, 버림받아 죽은 자와 같았던 다른 여러 이방 민족이 들어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지금 죽은 자처럼 버림받아 하나님과 멀어진 유대인도 다시 살아나는 것 같은 은혜를 바울이 꿈꾸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이 ‘이스라엘이 시기심을 품게 하셔서 결국 이스라엘도 회복하실 것이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의 구분은 사라지고, 그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의미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있습니다. 이 사실을 바울은 처음 익은 곡식과 감람나무로 비유합니다. 감람나무의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은 가지에 불과합니다. 처음 익은 곡식, 즉 첫 수확물이 하나님께 제사로 드려지면 나머지 곡식들도 모두 하나님께 드려졌다고 여겨졌고, 그것으로 만든 빵도 하나님께 드려진 셈입니다. 돌감람나무 가지라 하더라도 참감람나무에 접붙이면, 참감람나무의 뿌리 덕에 그 가지는 참감람나무의 일부가 됩니다.
첫 곡식과 뿌리는 모두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화목제물로 드려졌기에 우리도 드렸고, 우리가 예수님께 붙어있기에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그러나 믿음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면, 원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었다가 꺾여나간 가지가 된것처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께 가차없이 잘려나가는 가지가 될수 있습니다. 우리의 조건이나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의 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는 불에 태워질 뿐입니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위치가 역전된 이유를 명확하게 깨달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눈앞에서 메시아 믿기를 거부했고, 이방인들은 마음으로 복음을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이 시온에 두신 돌이 유대인들에게는 거치는 돌이 되어 넘어지게 했지만, 이방인에게는 믿음의 반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지성소의 휘장에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진 이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기준은 믿음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교만과 실패로 넘어진 유대인에게 아직 회복의 소망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또 다른 회복의 시작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방인이라는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을수 있다면, 원가지인 참감람나무인 유대인 역시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복음을 듣고 돌이키면, 기꺼이 받아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악인이라도 그가 자기 죄로 인하여 죽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죄에서 돌이켜 구원받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유대인들의 거부로 복음이 이방으로 흘러갔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유대인의 자리가 이방인으로 대체되었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결코 포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넘어짐과 이방인의 접붙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을 살퍼볼 수 있습니다.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입니다. 모든 유산을 허비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과거가 어떠했든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들을 하나님은 인자와 자비로 구원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돌감람나무인 이방인이었던 우리 역시 이스라엘의 넘어짐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 자들입니다.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나무에서 나오는 참감람나무의 열매를 맺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농부가 가지를 접붙일때는 열매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면, 잘려 나갈 수 있음을 기억하고, 두려움으로 근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의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오늘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구원의 영광에 동참한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고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서야 합니다.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특권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때만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형제를 겸손히 섬기고, 서로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내는 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삶입니다.
교만과 거만이 패망과 넘어짐의 원인이라는 말씀에서 성도가 지녀야 하는 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낮아짐으로 영광을 얻으신 주님을 본받아, 오늘도 낮은 자리에서 생명을 살리는 자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에 다시 회복의 은혜, 풍성함의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실패까지 사용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앞에 내가 순복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신앙의 뿌리를 생각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나와 공동체가 할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우리 가정괴 내가 속한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내가 할수 있는 일이 있나요?
오늘도 샬롬 ~~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Again I ask: Did they stumble so as to fall beyond recovery? Not at all! Rather, because of their transgression, salvation has come to the Gentiles to make Israel envious.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But if their transgression means riches for the world, and their loss means riches for the Gentiles, how much greater riches will their full inclusion bring!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I am talking to you Gentiles. Inasmuch as I am the apostle to the Gentiles, I take pride in my ministry
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in the hope that I may somehow arouse my own people to envy and save some of them.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For if their rejection brought reconciliation to the world, what will their acceptance be but life from the dead?
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If the part of the dough offered as firstfruits is holy, then the whole batch is holy; if the root is holy, so are the branches.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If some of the branches have been broken off, and you, though a wild olive shoot, have been grafted in among the others and now share in the nourishing sap from the olive root,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do not consider yourself to be superior to those other branches. If you do, consider this: You do not support the root, but the root supports you.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You will say then, “Branches were broken off so that I could be grafted in.”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Granted. But they were broken off because of unbelief, and you stand by faith. Do not be arrogant, but tremble.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For if God did not spare the natural branches, he will not spare you either.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Consider therefore the kindness and sternness of God: sternness to those who fell, but kindness to you, provided that you continue in his kindness. Otherwise, you also will be cut off.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And if they do not persist in unbelief, they will be grafted in, for God is able to graft them in again.
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After all, if you were cut out of an olive tree that is wild by nature, and contrary to nature were grafted into a cultivated olive tree, how much more readily will these, the natural branches, be grafted into their own olive 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