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25-33...오직 믿음으로
9장에 들어서면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범위를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따라서,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자’가 영적 이스라엘임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통해 이스라엘의 네 번째 특징을 설명하는데,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를 통해서 혈통적 이스라엘의 범위는 축소되고, 영적 이스라엘의 범위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로 확장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호세아와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여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원을 설명합니다. 먼저 호세아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방인을 ‘내 백성’으로 부르셔서 구원하시는데,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원래 이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말씀으로, 계속된 이스라엘 민족의 죄악에 대한 유기와 회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말씀을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새로운 부르심에 적용합니다. 여기서 ‘내 백성 아닌 자, 사랑하지 아니한 자’는 문자적으로는 이방인을, 의미로는 지속적으로 죄악의 길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뜻합니다. 이는 불순종을 거듭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린 이스라엘 민족이나,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민족이나 다를게 없다는 의미로 본문에서 바울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내가 사랑한 자’라고 다시 부르셨어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시고, 사랑하는 자로 불러 주셨습니다.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한 그곳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말이죠. 십자가의 구속으로 인해 백성이 아닌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입니다. 양자의 영을 받은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깨뜨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언약관계 밖에 있던 이방인들과 같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하나님의 언약관계 밖에 있던 이방인에게 적용하여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9;24절에서 말하는 ‘(긍휼의)그릇’은 유대인 중에서 남은 자와 부르심을 받은 이방인인 우리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영적 이스라엘이 유대인의 남은 자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로 확장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자기 뜻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반면에 두 번째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해 예언한 말씀으로 혈통적 이스라엘의 범위가 축소되었습니다(27,29).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바다의 모래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에서부터 이스라엘에는 ’남은자 사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고, 모세언약을 통해, 다윗언약을 통해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진노 가운데서도 당신의 죄악된 백성을 심판하는 중에도, 하나님은 남은 자, 곧 그루터기를 남겨두셨어요.
하나님이 씨를 남겨두지 않으셨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 남은 자 중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에 따라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긍휼하심을 입어 구원받은 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약속은 폐하여지지 않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신 분임을 강조합니다.
‘나를 봐라. 나는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고 박해하며, 심지어 그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고 그들이 죽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로 내가 지금 구원받은 백성으로, 너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지 않았느냐?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남겨둔 사람들이 있더라. 그러니 하나님의 약속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불의하지 않고 신실하시다. 그러니 지금 눈앞에 나타나는 현상들을 가지고, 이스라엘이 주께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마치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처럼 말하지 마라.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게 말씀 가운데 일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너희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하나님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의심하지 마라’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하나님의 선택적 은혜에 따라서, 참 이스라엘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바울 자신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혈통적 이스라엘 가운데 ‘남은 자’만 구원받는 사실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받았다고 해도,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의 다수는 여전히 구원밖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 즉 메시아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의 잘못입니다.
인간의 행위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밖에 없습니다. 유대인이 율법의 행위로 의를 얻을 수 있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의 행위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음을 확증하는 증거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고 그 율법을 열심히 준수하려 했습니다. 자신들의 행위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행위 뒤에 숨은 내면의 동기를 보시는 분입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없기에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함을 입을 육체는 없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달을 뿐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런 율법을 의지했고, 믿음을 거부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시온에 두신 돌, 곧 구원의 반석이신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믿음이 아닌 행위를 의지한 이스라엘이 부딪힐 돌에 부딪힌 것입니다. 그래서 다수의 이스라엘 사람은 구원에서 멀어졌고, 소수의 이스라엘 사람만 구원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지 않으셔서 이스라엘이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자신의 의로운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에 자신의 의로운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면에 이방인들은 율법을 몰랐기 때문에,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의에 이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이 시온에 두신 돌, 반석이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 곧 주춧돌이 되었던 것입니다(사 28;16).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행위로 하나님의 의에 이르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인이기에 스스로 힘으로는 절대로 의로워질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의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 자만이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행함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로워질 수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자신을 철저히 부인해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붙잡을 수 있습니다. ‘내가 믿었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십자가의 은혜를 겸손히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 앞에는 율법의 길과 믿음의 길이 있습니다. 율법의 길은 죄를 깨닫게 하지만, 구원으로 인도하지는 못합니다. 믿음의 길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길입니다. 율법으로는 의로워질 수 없기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믿음의 길,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연약하고 불완전한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면, 결코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자신이 의지했던 고집과 자아를 내려놓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십자가, 유일한 구원의 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나의 힘과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구원의 문제는 인간적인 힘과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실패하지 않는 인생이 되려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 나의 인생을 맡기고 의지해야 합니다.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의 반석이 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의 돌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내 인생의 걸림돌이 아닌 주춧돌로 받아들일 때, 우리 인생은 영원히 실패하지 않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에게 주님은 구원의 반석이 되십니다.
*이방인인 나를 택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나는 어떻게 감사와 찬양을 고백할 수 있을까요? 믿음보다 행함을 앞세우는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오늘도 샬롬 ~~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As he says in Hosea: “I will call them ‘my people’ who are not my people; and I will call her ‘my loved one’ who is not my loved one,”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and, “In the very place where it was said to them, ‘You are not my people,’ there they will be called ‘children of the living God.’ ”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자만 구원을받으리니
Isaiah cries out concerning Israel: “Though the number of the Israelites be like the sand by the sea, only the remnant will be saved.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For the Lord will carry out his sentence on earth with speed and finality.”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It is just as Isaiah said previously: “Unless the Lord Almighty had left us descendants, we would have become like Sodom, we would have been like Gomorrah.”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What then shall we say? That the Gentiles, who did not pursue righteousness, have obtained it,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but the people of Israel, who pursued the law as the way of righteousness, have not attained their goal.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Why not? Because they pursued it not by faith but as if it were by works. They stumbled over the stumbling stone.
33. 기록된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As it is written: “See, I lay in Zion a stone that causes people to stumble and a rock that makes them fall, and the one who believes in him will never be put to sh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