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WORD

죄로부터의 자유

로마서 6;1-11...죄로부터의 자유

바울은 복음을 전할때마다 유대인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오해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공격과 그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것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롬 5;20)는 바울의 말을 ‘그렇다면 더 큰 은혜를 받으려면 계속해서 죄를 지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오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문제를 바로잡으려 합니다. 그리고 단호하게 ‘그럴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앞단락 5;12-21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에게 사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죄로부터의 자유가 선언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세례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설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면서 구원받은 성도는, 육신의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에 연합한 자가 되고, 예수님의 부활과도 연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시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자가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 물에 들어가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는 것이요, 물에서 나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더 이상 죄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사는 것은 내 생명으로 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난 삶입니다. 그래서 삶의 기준도 달라지고, 목적도 달라지고, 의미도 달라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한 사람은 예수님의 부활과도 연합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의 공동체에서 의와 생명의 공동체로 이동했음을 선언하는 것이죠. 이는 아담에게 속했던 옛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에, 그리스도인에게는 더 이상 죄가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으며, 더 이상 죄에 종노릇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죄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무 죄도 범하지 않고, 완벽하게 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죄의 지배가 끊어졌다는 것은, 죄가 패배했다는 것이며, 성도들이 점진적으로 성화의 삶을 살 수 있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길이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얼마나 많은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이전의 죄악된 삶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거룩한 인생을 사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세례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는 세상과 죄에 대해서는 장례식입니다. 또 하나님과 교회에 대해서는 새로 태어나 처음 축하받는 백일 잔치와 같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아버지의 영광을 따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 가운데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지배에서 벗어난 자들입니다. 성령안에서 아름답게 성숙해질 수 있는 길이 열려있습니다. 이제는 육신이 시키는 본능대로 살지 않고. 죄를 이기고, 그리스도를 본받을 수 있는 자임을 기억하고, 주님의 은혜를 따라 말씀대로 살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은혜를 아는 사람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주인이 바뀌었기에 출발점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자기 스스로 자기를 구원하려 하다가 늘 낙심했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살아나심에 연합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계획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날 것도 믿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다시 죽지 않습니다. 사망이 주님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같습니다. 우리 코에 호흡이 끊기는 날에도, 우리는 사망에 지배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장례식은 다릅니다. 슬픈 마음은 있지만, 그래도 찬송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죽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다스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죄의 유혹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죄의 유혹을 받을 수 있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죄의 세력이 이전처럼 우리에게 결정적 패배를 안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죄에 저항할 수 있고, 죄의 세력을 이기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죄가 더 이상 우리에게 결정적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기에, 세례를 통해 주님의 죽으심과 살아나심에 연합한 우리에게는 죄에 대한 저항력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죄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구원받기 이전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놀라운 무기를 공급받고도 무기를 창고 안에 방치해 둔 채 적들에게 유린당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하나님은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갈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우리 ‘옛사람’도 죽었습니다. 죄를 즐기던 본성, 자기중심적이던 태도, 세상의 즐거움을 따르던 옛 자아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 삶을 지배하려 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향해 ‘나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권세며, 세례를 통해 주님과 연합한 자의 삶에 나타나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제 죄는 더 이상 우리의 주인이 아닙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죄의 땅은 지나는 곳일뿐, 우리가 다시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는 살아있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반응하고, 교제하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새롭게 바꾸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의의 종으로 살게 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도가 얻은 구원은 죄에 대해 죽고 의를 향해 사는 구원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정체성입니다. 악한 세상에서 성도가 거룩하게 살아가려면, 바른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바르게 알아야 죄에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성도는 이미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은 자입니다.

예수님은 죄에 대해서는 단번에 죽으셨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사셨습니다. 주님과 연합한 우리 역시 날마다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살아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할수 없으나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타락한 육체의 본성은 끊임없이 우리를 죄로 향하게 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는 자신이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죽음과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은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산다는 확신입니다. 그것이 새 생명이고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죄로부터 자유케 되었기에, 죄는 더 이상 우리의 왕노릇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을 다스립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시작하고 예수님과 함께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우리의 구원은 온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그 날을 소망하며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세례를 받은 이후 나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요? 내가 십자가에 못박아야 하는 과거의 잘못된 행동은 무엇이 있나요? 내가 거룩한 성도로서의 거룩함 삶을 추구하며 살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도 샬롬 ~~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What shall we say, then? Shall we go on sinning so that grace may increase?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By no means! We are those who have died to sin; how can we live in it any longer?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Or donʼt you know that all of us who were baptized into Christ Jesus were baptized into his death?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We were therefore buried with him through baptism into death in order that, just as Christ was raised from the dead through the glory of the Father, we too may live a new life.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For if we have been united with him in a death like his, we will certainly also be united with him in a resurrection like his.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For we know that our old self was crucified with him so that the body ruled by sin might be done away with, that we should no longer be slaves to sin—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because anyone who has died has been set free from sin.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Now if we died with Christ, we believe that we will also live with him.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For we know that since Christ was raised from the dead, he cannot die again; death no longer has mastery over him.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The death he died, he died to sin once for all; but the life he lives, he lives to God.

11. 이와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자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자로 여길지어다
In the same way, count yourselves dead to sin but alive to God in Christ 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