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WORD

당연하지 않은 은혜, 믿음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4;1-8...당연하지 않은 은혜,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바울이 전하는 이신칭의의 복음은 유대인들로부터 격렬한 저항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인들조차 구원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가 없다는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으니까요.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버릴 수 없었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자들과 영적으로 동등하다는 가르침을 쉽게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설명하기 위해 유대인들에게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던 아브라함과, 유대인의 왕 다윗을 소환해 옵니다.

아브라함은 유대민족의 뿌리요, 이스라엘 신앙의 기둥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그의 이름은 곧 믿음의 대명사처럼 쓰였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의 나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고향을 떠나 가나안을 향해 길을 나섭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세 가지였습니다. 자손과 땅과 복이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후 하나님이 다시 환상중에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아브라함은 여전히 자손이 없었고, 땅 한평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자신은 후손이 없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하늘에 있는 수많은 별을 보며 ‘너의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신기한건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하신 그 약속의 말씀을 믿었다는 겁니다. 지난 10년 동안 처음 하나님의 약속하셨던 말씀이 하나도 성취되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은 또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그 ‘믿음’을 ‘의롭다’ 하셨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지만, 우리가 보기에 완벽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 두 번이나 아내를 누이라 속이기도 했고, 기근을 피해 가나안을 떠나는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 하갈을 취해 가정에 분란을 자초하기도 했습니다(창 16:4). 그런데 어떻게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일 수 있을까요? 비록 실수하고 넘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받는데 아브라함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의롭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창15;6). 믿음으로 얻는 이 은혜가 바로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저 믿음 하나만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아직 율법이 주어지기 전이고, 할례를 행하기 전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하나님이 우리 통장에 ‘의로움’을 입금해 주신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의로워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죄사함 받기 위해 우리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우리가 한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주고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는 것, 그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칭해 주셨어요. 그것이 은혜요 복음입니다.

일한 사람이 보수를 받는 것은 은혜가 아니라 당연한 일입니다. 일을 했으면 그에 합당한 댓가를 요구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하나님의 ‘의’가 은혜가 아닌 인간의 ‘행위’에 의해 주어진다면,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켰으니, 하나님이 구원해 주셔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양심을 지키고 착하게 살았으니, 하나님이 구원해 주셔야 한다고 할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보수가 아니라 거저 은혜로 주어집니다.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매달 통장으로 돈이 입금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도, 모두 하나님이 값없이 거저 주시는 크신 은혜입니다.

은혜는 당연히 받는 보수와 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보상을 받을 만해서 받는다면 그것을 은혜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분명히 보수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너무 쉽게 망각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 사랑과 은혜를 업신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볍게 여기면서 하나님의 초청을 무시합니다(눅14:16~24). 하지만 들어가고자 해도 닫힌 문이 열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마 15;1-13). 문이 닫히면 그때 깨닫게 됩니다. 게으름과 이기심으로 놓친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 이를 갈며 후회할 때는 이미 늦습니다. 받은 은혜를 감사할 줄 아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믿음은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음을 인정하고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한것이 없음을 인정하는 사람을 의롭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죄인인 인간이 행하는 것은, 다 죄악일 뿐이어서 내세울 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우리는 이렇게 할례도 받고 율법도 지켰으니, 의인의 자격이 있습니다”라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고 여김을 받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일마다 예배드리고, 헌금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바치고, 기도생활도 하고, 말씀 묵상도 하니까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 주실 것이다”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음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는 믿음으로부터 나옴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값없이 주어지는 구원의 은혜, 곧 죄사함의 은혜를 설명하기 위해 다윗을 예로 듭니다. 다윗 역시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말합니다. 바울이 아브라함에 이어 다윗의 시편까지 인용한 것은,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명 이상의 증인이 필요하다는 유대교의 원칙 때문입니다.

바울이 인용한 다윗의 시편 51편은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다윗이 이웃집 여인 밧세바를 취하여 간음하고, 이를 숨기기 위해 사랑하는 부하 장군 우리야를 죽이는, 정치적 도덕적으로 무너진 그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이를 알고 다윗을 찾아와 책망하자, 다윗은 그 자리에서 무릎꿇고 주저앉아 통곡하며 회개합니다. 그런 그의 죄를 하나님은 용서하셨습니다. 우리의 힘과 능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기만 하면, 그의 죄를 덮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무 공로없는 이를 의롭다고 하실수 있는 분입니다. 씻을수 없는 죄로 괴로워하던 다윗도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자복함으로 용서함을 받고 기뻐했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성도는 죄인임에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구원의 은혜는 값없이 주어지지만 당연하지는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죄 용서는 영적 생명과 직결되는 일입니다. 죄사함이란 우리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고, 장부에 기록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이는 분명히 존재하는 죄를 가려주시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받는 용서는 우리의 의로움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어진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자신의 의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오직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한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값없이 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변함없이 은혜로 우리를 채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마다 변함없이 응답하십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지만, 당연한 듯 주시는 은혜를 받지만, 그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는 결코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고 찬송해야 합니다. 죄인인 우리가 죽음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는 길은 오직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밖에 없으니까요.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을 얻고자 하는 나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있나요? 나의 죄의 짐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을 때 하나님은 내게 어떤 은혜를 주시나요?

오늘도 샬롬 ~~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What then shall we say that Abraham, our forefather according to the flesh, discovered in this matter?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If, in fact, Abraham was justified by works, he had something to boast about—but not before God.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What does Scripture say? “Abraham believed God, and it was credited to him as righteousness.”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Now to the one who works, wages are not credited as a gift but as an obligation.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However, to the one who does not work but trusts God who justifies the ungodly, their faith is credited as righteousness.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David says the same thing when he speaks of the blessedness of the one to whom God credits righteousness apart from works: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Blessed are those whose transgressions are forgiven, whose sins are covered.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Blessed is the one whose sin the Lord will never count against th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