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1-8...여전히 신실하신 하나님
지금까지 바울은 율법을 받은 유대인과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이는 그 본질에 있어서 별 다를바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구원받았다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다보니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개척한 교회에 거짓 교사들이 등장하여 공동체를 어렵게 하는 일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동안 유대인들이 제기할 수 있었던 반론을 언급하면서, 그에 대한 답변도 제시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바울이 사역하면서 그동안 수많은 반론에 맞서 논쟁거리로 등장했던 반론과 대답일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구원받는데, 큰 차이가 없다면,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나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냐? 구약에서부터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지금까지 이끌어오신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먼저 유대인의 정체성과 율법을 맡은 특권에 대해 분명하게 긍정합니다. 이것들이 모두 하나님에게서 왔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록하고, 교육하고. 배우고. 행하면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개인과 공동체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율법의 말씀을 온전히 가르치고 따르는데 실패했습니다. 말씀을 곡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율법을 따르는데 실패하고 언약을 지키는데 신실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취소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율법을 범함으로 언약을 지키는데 신실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파기하지 않으시고 신실하게 지키셨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의 언약은 서로가 지킬 때 효력이 발생합니다. 어느 한쪽이 어기면 언약은 파기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언약을 어겼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 언약에 신실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신실하지 않다고 하나님도 신실하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어떠하든지 여전히 신실하신 분입니다.
유대인들의 불신앙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무너뜨릴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하신대로 행하시고 이루시는 분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해도 하나님은 언제서 진실하시며, 그분의 판결은 의롭고 정당합니다. 유대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하나님은 참되시고 신실하십니다.
모든 유대인이 율법대로 살지는 않는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도 유대인 대부분이 그분을 대적한 것처럼, 지금도 복음의 초청을 받았음에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8철). 아담이 범죄 직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피해 숨은 이래로, 사람들은 불신, 두려움, 탐욕으로 하나님을 거부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거부한 그들의 잘못이지, 하나님의 선하심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이었기에 이방인에 비해 하나님을 가까이 대하며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을 오늘날 ‘모태신앙’으로 비유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듣고 보는 것이 많다보면 예수님을 믿을 확률이 크고, 혹 믿음이 흔들려도 돌이키기 쉬운 환경에 있으니 모태 신앙인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훨씬 더 나은 위치에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방인들보다 훨씬 더 나은 위치에 있는 것을 오해하여 하나님이 자기들만 인정해 주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이런 영적 교만을 무너뜨리는 진리입니다. 구원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별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누리는 유익은 참으로 많습니다. 구원을 받고, 복과 은혜를 누리고, 환난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유익은 하나님의 일을 알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율법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주어진 것처럼, 우리에게는 성경이 주어졌고, 성령님이 그 말씀을 통해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십니다. 유대인들의 영적 교만으로 인한 실패를 되돌아보면서, 우리에게는 신앙의 잘못된 모습은 없는지,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고 신앙을 살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바울은 또 다른 반론과 답변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주제를 옮겨갑니다.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불의에 대해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이 공정하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거짓말이 하나님의 참되심을 더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면, 그 거짓말에 대해 왜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 라는 것이죠. 이들의 주장은 ‘너희가 하나님께 신실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너희에게 여전히 신실하시다’는 바울의 주장을 왜곡하고 비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불의하지만,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심으로 의로우시다면, 여전히 신실하시다면, 여전히 약속을 지키신다면, 우리를 여전히 당신의 백성으로 여기시고 돌봐주신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지 않으셔야 하지 않느냐? 만약 진노를 내리신다면,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은 불의하신 것이냐?
이들의 주장에 대해 바울은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시면 세상을 심판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공의로운 재판장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등을 돌릴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항해 인자와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때에는 다릅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온전히 회복하시는 때입니다. 만약 유대인들이 그때까지 불신앙과 불의 가운데 머문다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심판자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거부하고 왜곡하는 자는 정죄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인간의 불의함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합니다. 하나님은 불의를 용납하실 수 없고, 죄인은 결국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정죄는 무섭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의의 심판이며, 공의의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불의한 우리는 온전히 의로우신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의로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어 하나님 앞에 의롭게 여겨진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불의함이 드러나면 감정적으로, 반항적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런다고 자신의 불의가 감춰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도 자신의 불의를 합리화할 수 없습니다. 겸손하게 말씀의 빛으로 자신의 삶을 비춰봐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 엎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받은 자와 은혜받지 못한 자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 이해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겸손히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말씀 그대로 읽고, 읽은 그대로 살아가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과 상황으로 말씀을 읽는 순간, 우리는 결국 하나님 앞에서 변명만 잔뜩 늘어놓는 어리석은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참되며, 그분의 심판은 언제나 의롭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매순간 정직하게 나아간다면, 주님은 우리를 반드시 회복시키시고 다시 은혜의 자리로 이끄실 것입니다. 오늘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여전히 신실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은혜가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기에 내가 용납할 일이 있나요? 복음을 왜곡하는 이들에게 나는 그 진리를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요?
오늘도 샬롬 ~~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What advantage, then, is there in being a Jew, or what value is there in circumcision?
2.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Much in every way! First of all, the Jews have been entrusted with the very words of God.
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What if some were unfaithful? Will their unfaithfulness nullify Godʼs faithfulness?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Not at all! Let God be true, and every human being a liar. As it is written: “So that you may be proved right when you speak and prevail when you judge.”
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But if our unrighteousness brings out Godʼs righteousness more clearly, what shall we say? That God is unjust
in bringing his wrath on us? (I am using a human argument.)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Certainly not! If that were so, how could God judge the world?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Someone might argue, “If my falsehood enhances Godʼs truthfulness and so increases his glory, why am I still condemned as a sinner?”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Why not say—as some slanderously claim that we say—“Let us do evil that good may result”? Their condemnation is ju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