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17-29...하나님의 백성이란?
오늘날 교회가 조롱과 핍박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 이유가 복음 때문이라면 우리는 자랑스럽게 견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오히려 복음전파의 장애물이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당시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처하며 이방인들을 멸시했던 유대인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하는 현실을 고발합니다. 이를 통해 바울은 비록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았다 할지라도, 그들의 삶이 이방인과 다르지 않다면, 그들 역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기에, 그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복음이 필요할 수밖에 없음을 역설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라는 대단한 민족적 자부심을 가지고 이방인들을 멸시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많은 특권을 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율법이었습니다. 1세기 로마시대 유대교 회당에서는 유대인들만 모인 것이 아니라, 유대교에 관심을 가진 이방인들도 함께 모였는데, 그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만약에 이방인들 중에 탁월한 지성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율법을 따로 공부해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갖추었다고 해도, 유대인이 이방인에게 율법을 배우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율법의 가르침보다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유대인이라는 자부심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율법을 주신 의도는, 그들이 먼저 율법으로 거룩함을 이루고, 다른 이들을 거룩함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고,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기는 하지만,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도둑질하고, 간음하며, 신전 물건을 훔쳤습니다. 율법을 자랑하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정도로 잘 알지만, 정작 자신은 율법대로 행하지 않아 종교 위선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이 믿는다고 내세우는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에게 모욕당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성도가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모독당하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과 무시를 당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말씀대로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구원의 말씀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그 말씀에 제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위선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때문에 모독을 받을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에서 높임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셔서 그를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받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크신 은혜와 사랑의 베푸셨을 뿐 아니라 각 사람에게 은사도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으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우리를 통해 특별한 일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에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자신이 갖고 있는 달란트의 차이에 집중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각자의 소명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어떤 것으로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이 아닌 그것을 이루는 수단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명입니다.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해 이익을 남기는 것이 주인의 뜻이지, 달란트를 자랑하거나 부끄러워 숨겨두는 것은 무익하고 악한 종의 태도입니다(마 25:15~-29).
이것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목적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특별한 삶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것입니다(마 5:16).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에, 우리가 침묵하면 세상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의 삶이 세상 사람과 다를바 없다면, 하나님의 이름은 세상에서 높임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면, 그 선물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에게 주신 소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원하시는데, 우리의 삶이 빛이 아니고 어두움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합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세상이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만민 중에서 우리를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출33:16).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1세기 유대 사회는 율법 중심의 경건생활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표시였고, 유대인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믿음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적이고 외형적인 종교의식에만 머무는 경향이 강했지, 정직 율법의 근본정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무감각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위선적 경건은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 대한 책망에서도 반복적으로 드러납니다(마 23장).
분명 할례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표시이며 보증이지만, 할례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보증 수표가 아닙니다. 외적 할례가 순종의 삶을 대신 할수는 없습니다. 율법에 대한 순종이 없는 할례는 그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이 집중하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율법이 있는 유대인이나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나 은밀한 것까지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과 영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과 그 마음을 드러내는 ‘행함’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마음에 할례를 받고, 그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의 삶은 작심삼일로 끝나는 열매 없는 삶도 아니고, 바리새인처럼 행동만 있는 외식의 삶도 아닙니다. 믿음과 행함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가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엡 4:13). 세례를 받고 직분을 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의 중심이, 삶이 변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칭찬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상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향해야 합니다(마 25:21).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압니다. 세상 염려와 근심, 환난, 죄의 끈질긴 유혹은 매일 우리를 실패하게 만듭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말씀을 따라가기 위해, 순종하는 삶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길 간구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기를 구하며,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봅시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 앞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행하는 성도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면이 변화되어야 진정한 신앙인입니다. 내면의 가죽을 자르는 도구는 성령의 검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면의 가죽을 깎아내는 사람이 참 할례를 받은 사람이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성도는 외적 변화도 중요하지만, 내적 성숙도 주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때, 그 삶은 우리가 받은 것보다 휠씬 더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개선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는 외면과 내면중에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나요?
오늘도 샬롬 ~~
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Now you, if you call yourself a Jew; if you rely on the law and boast in God;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if you know his will and approve of what is superior because you are instructed by the law;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if you are convinced that you are a guide for the blind, a light for those who are in the dark,
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an instructor of the foolish, a teacher of little children, because you have in the law the embodiment of knowledge and truth—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you, then, who teach others, do you not teach yourself? You who preach against stealing, do you steal?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You who say that people should not commit adultery, do you commit adultery? You who abhor idols, do you rob temples?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You who boast in the law, do you dishonor God by breaking the law?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As it is written: “Godʼs name is blasphemed among the Gentiles because of you.”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Circumcision has value if you observe the law, but if you break the law, you have become as though you had not been circumcised.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So then, if those who are not circumcised keep the lawʼs requirements, will they not be regarded as though they were circumcised?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The one who is not circumcised physically and yet obeys the law will condemn you who, even though you have the written code and circumcision, are a lawbreaker.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A person is not a Jew who is one only outwardly, nor is circumcision merely outward and physical.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No, a person is a Jew who is one inwardly; and circumcision is circumcision of the heart, by the Spirit, not by the written code. Such a personʼs praise is not from other people, but from 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