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0;9-22...떠나는 것도 사랑입니다.
사람이 가장 격한 아픔을 느낄 때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때라고 합니다. 너무 사랑하지만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어서 이별을 택하는 마음은 수많은 시와 노래가 되어 지금도 불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성전을 떠나십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곳이요,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성전에서 간구하는 기도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결국 성전을 떠나십니다. 거룩함이 사라지고 우상 숭배가 만연한 그곳에 하나님이 더 이상 머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너무나 사랑하셨지만, 그들의 가중한 죄악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시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이 에스겔서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생물들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이는 그발강 가에서 보았던 모습과 일치합니다. 바퀴는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힘과 의지에 의해 움직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겉보기에는 여러 우연과 법칙이 수없이 겹쳐져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어느 것도 우연히 발생하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의 시작과 마침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룹의 바퀴들 둘레에는 눈이 가득했습니다. 이는 바퀴가 어디로 가든지 몸을 돌릴 필요가 없이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온 땅 어디든지 가실 수 있는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내는 것이며, 하나님이 온 땅을 감찰하시기에 하나님을 피해 숨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음을 알게 합니다. 성전에서 행해지는 우상 숭배는 하나님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행해졌지만,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는 이 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눈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둠도 숨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지켜보시고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이를 알고 인정하는 자는 신앙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마치 요셉이 보디발 아내의 유혹 앞에서도, “내가 어찌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며 단호히 뿌리치던 것과 같은 태도를 취합니다. 항상 우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순수한 신앙인으로 설 수 있어야 하며, 거룩한 성전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호위하는 그룹들과 바퀴들이 위로 올라감으로써 하나님의 행차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룹과 바퀴는 각기 구별된 존재들이지만 하나님의 영에 따라 한 몸처럼 움직입니다. 이 모습은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섬겨야 할지를 알려 줍니다. 우리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온전히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본래 우리는 죄인들이기에 마귀가 이끄는대로 살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며 하나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납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그룹들 위로, 다시 성전 바깥 동문으로 이동했고,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덮였습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떠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성전 문에서 잠시 멈춰 뒤돌아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고,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싶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선지자를 보내 돌이킬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경고를 가벼이 여겼고, 무시했으며 멸시했습니다. 급기야 우상의 본거지가 될 정도로 타락한 예루살렘을 하나님은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에 단호하게 결단을 내리신 것입니다. 성전을 떠나시기로 말이죠.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지만, 이번만큼은 참으로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다는 것은 가장 무서운 형벌이기 때문입니다. 보호자이신 하나님이 떠나신다면, 성도의 운명은 그야말로 마귀의 밥이 될수밖에 없습니다. 늘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장소에 얽매이는 분이 아닙니다. 비록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기는 하셨지만, 하나님은 어디든 가실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은 여전하며, 하나님은 모든 장소를 초월해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에스겔이 머물고 있는 바벨론에도 얼마든지 임재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바벨론에서 포로가 되어 죗값을 치르고 있는 백성과도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고치시기 원하셨고, 그들이 돌이키기를 원하셨습니다. 비록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해 회초리를 드셨지만, 끝까지 함께 하시고, 그 사랑을 거두지 않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모습이 10~11장에 드문드문 묘사됩니다. 이 같은 묘사는 하나님이 훌훌 털고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선뜻 발걸음을 떼지 못하시는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미련이 남아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비록 노하셔서 떠나시지만, 그럼에도 이스라엘을 누구보다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쉽게 떠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애절한 사랑을 잊지 맙시다. 그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잊지 맙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우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겨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줄 알았고, 하나님이 영원히 자기들을 떠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 생각대로 믿었던 것입니다. 성령님은 자기 생각으로 채워진 사람 가운데 거하실수 없습니다. 성도는 성령님이 거하실 거룩한 처소로 지어져 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큰 복과 사랑을 받은 민족입니다. 그럼에도 가증한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배신했기에, 결국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불의와 우상 숭배로 더러워진 예루살렘 성전에는 하나님이 더 이상 계실 수 없으셔서 여호와의 영광이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그들을 바로잡기 위해 모든 것을 부수고 다시 시작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역시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시기에 무섭게 징계도 하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성도는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령의 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이스라엘보다 더 큰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실패를 교훈 삼아서, 마땅히 하나님의 임재를 최우선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타인과의 비교속에서 스스로를 거룩한 성령의 전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성령이 거하시는 전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름답게 빚어져 가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이 차고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임박한 심판에서 돌이키도록 내가 공동체를 위해 품고 기도할 일은 무엇인가요? 사랑하기에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는 얼마나 깊이 느끼나요?
오늘도 샬롬 ~~
9. ○내가 보니 그룹들 곁에 네 바퀴가 있는데 이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고 저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으며 그 바퀴 모양은 황옥 같으며
I looked, and I saw beside the cherubim four wheels, one beside each of the cherubim; the wheels sparkled like topaz.
10. 그 모양은 넷이 꼭 같은데 마치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As for their appearance, the four of them looked alike; each was like a wheel intersecting a wheel.
11. 그룹들이 나아갈 때에는 사방으로 몸을 돌리지 아니하고 나아가되 몸을 돌리지 아니하고 그 머리 향한 곳으로 나아가며
As they moved, they would go in any one of the four directions the cherubim faced; the wheels did not turn about as the cherubim went. The cherubim went in whatever direction the head faced, without turning as they went.
12. 그 온몸과 등과 손과 날개와 바퀴 곧 네 그룹의 바퀴의 둘레에 다 눈이 가득하더라
Their entire bodies, including their backs, their hands and their wings, were completely full of eyes, as were their four wheels.
13. 내가 들으니 그 바퀴들을 도는 것이라 부르며
I heard the wheels being called “the whirling wheels.”
14. 그룹들에게는 각기 네 면이 있는데 첫째 면은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 면은 사람의 얼굴이요 셋째는 사자의 얼굴이요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더라
Each of the cherubim had four faces: One face was that of a cherub, the second the face of a human being, the third the face of a lion, and the fourth the face of an eagle.
15. ○그룹들이 올라가니 그들은 내가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생물이라
Then the cherubim rose upward. These were the living creatures I had seen by the Kebar River.
16. 그룹들이 나아갈 때에는 바퀴도 그 곁에서 나아가고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땅에서 올라가려 할 때에도 바퀴가 그 곁을 떠나지 아니하며
When the cherubim moved, the wheels beside them moved; and when the cherubim spread their wings to rise from the ground, the wheels did not leave their side.
17.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 그들이 올라가면 이들도 함께 올라가니 이는 생물의 영이 바퀴 가운데에 있음이더라
When the cherubim stood still, they also stood still; and when the cherubim rose, they rose with them, because the spirit of the living creatures was in them.
18.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Then the glory of the LORD departed from over the threshold of the temple and stopped above the cherubim.
19.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눈앞의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 하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
While I watched, the cherubim spread their wings and rose from the ground, and as they went, the wheels went with them. They stopped at the entrance of the east gate of the LORDʼs house, and the glory of the God of Israel was above them.
20. ○그것은 내가 그발강 가에서 보던 이스라엘의 하나님 아래에 있던 생물이라 그들이 그룹인 줄을 내가 아니라
These were the living creatures I had seen beneath the God of Israel by the Kebar River, and I realized that they were cherubim.
21. 각기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으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형상이 있으니
Each had four faces and four wings, and under their wings was what looked like human hands.
22. 그 얼굴의 형상은 내가 그발강 가에서 보던 얼굴이며 그 모양과 그 몸도 그러하며 각기 곧게 앞으로 가더라
Their faces had the same appearance as those I had seen by the Kebar River. Each one went straight ahead.